사법시험 합격자 나왔지만 시각장애인‘공부 장벽’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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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숙명여대 순헌관 강의실. 이 대학 교육학부 김경민(20)씨가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었다. 김씨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13살 때 시력을 잃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전공 책 대신 점자 정보단말기가 놓여있다. 김씨는 이 기기의 자판을 눌러 수업 내용을 점자로 메모한다. 영어교사가 꿈인 그는 이번 학기에 6과목(18학점)을 수강한다. 영어와 교육학 관련 전공 수업이 대부분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가 공부하는 데 가장 힘든 점은 전공 서적 등을 점자나 음성으로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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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정보단말기는 아래아 한글 등으로 작성된 텍스트파일을 입력하면 점자나 음성으로 변환해 준다. 김씨의 컴퓨터에는 텍스트파일을 음성으로 바꿔주는 보이스 프로그램도 깔려 있다.
◆멀고도 험한 고등교육= 하지만 각종 도서의 디지털화된 파일을 구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다행히 김씨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고 있다. 340여 쪽에 달하는 『영어학 입문』 책의 경우 자원봉사자 세 명이 진도에 맞춰 20여 쪽씩 직접 컴퓨터에 입력해 파일을 만들어 준다. 김씨는 “일반인에 비해 10배 이상 시간을 쏟아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학기 초만 되면 시각장애인용 교재를 마련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강의를 못 듣는 꿈까지 꾼다”고 토로했다.
이번 학기에 듣는 교육행정학 과목은 담당 교수가 직접 집필한 교재의 텍스트파일을 김씨에게 줬다. 그러나 교육학 관련 서적을 출간한 출판사 세 곳은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각서와 담당 교수의 서명을 받아 요청했는데도 모두 텍스트파일 제공을 거부했다. 김씨는 “올여름 방문한 미국 이스트워싱턴대학의 시각장애인 지원시설에는 학교 교재로 쓰이는 전공 책들이 모두 디지털 파일과 CD로 저장돼 있었다”며 “한국에선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법 개정 추진=점자나 음성으로 변환 가능한 디지털 파일을 제공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에는 저작권법을 개정해 시각장애인이 텍스트파일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은 ‘공표된 저작물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해 점자로 복제, 배포할 수 있다’는 저작권법 33조 1항의 내용을 ‘점자나 인쇄물 음성변환출력기용 정보기록 방식’으로 확대하자는 개정안을 지난 7월 대표발의했다.
시각장애인연합회 임종혁 팀장은 “전체 국내 출간물 중 점자화된 것은 2%도 안 된다”며 “출판사에서는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텍스트파일을 저작권을 이유로 판매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판사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에게 제공한 텍스트파일이 유출된 적이 있었다”며 “저작물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 때문에 부득이하게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이익섭(사회복지학) 교수는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보장은 혜택이 아닌 당연한 권리”라며 “미국에서는 의무교육 수준의 저작물을 국가 차원에서 음성파일이나 텍스트파일로 제공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강기헌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emc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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